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립 트루시에 (문단 편집) === 일본 대표팀 === 1998년, [[오카다 다케시]]의 후임으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다. 사실 처음에 일본은 [[나고야 그램퍼스]]의 감독 경력이 있는 [[아르센 벵거]]를 영입하려고 했으나, 벵거는 제안을 거절하는 대신 트루시에를 추천해준 것. [[http://naver.me/5UhUPoOA|#]] 계약 기간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까지이며, A대표팀과 연령별 대표팀을 모두 지도하게 되었다. [[파일:트루시에.jpg|width=400]] U-20에서는 [[1999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나이지리아|1999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올림픽 대표팀에서는 [[2000 시드니 올림픽]]의 [[2000 시드니 올림픽/축구(남자)|남자축구]]에 나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슬로바키아]]를 연속으로 이기고 마지막에 [[브라질]]한테 패하면서 2승 1패 조 2위로 8강에 진출하였으나, 8강에서는 [[미국]]과 [[승부차기]] 끝에 4:5로 패하면서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8강 6위)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그도 위기에 봉착했던 적이 있었는데, 2000년 봄, 운명의 [[한일전]]에서 패배한 이유로 경질 여론이 돌기 시작한 것. 사실 일본 특유의 색깔에 유럽의 철학을 입히는 과정에서 [[일본축구협회]]와의 갈등도 있었는데, 한일전 패배를 기점으로 이것이 폭발한 것이다. [[http://mn.kbs.co.kr/news/view.do?ncd=75331|#]] 일본은 아르센 벵거 선임으로 리턴하며 물밑작업까지 진행하는 등 분위기는 험악해졌으나, 기술위의 재신임 결정으로 가까스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이런 불신에 반응하기라도 한 듯 성인 대표팀에서는 [[2000 AFC 아시안컵 레바논]] 우승,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월드컵 우승국, 각 대륙컵 우승국, 개최국이 진출한 8개국 대회이며, 일본은 2000아시안컵 우승국 자격과 2002 [[FIFA 월드컵]] 개최국 자격으로 진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도 개최국이므로 마찬가지로 진출했으나, 한국은 당시 [[거스 히딩크]]가 갓 부임한 시점이라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첫 상대였던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에 0:5로 깨진 것이 화근이 되어서 승점 6점 2승 1패를 기록하고도 골득실에서 밀리는 바람에 조 3위 대회 5위로 아쉽게 4강 진출 실패라는 성적으로 조기에 대회를 마쳤다.]에서 브라질과 0:0 무승부로 승점 1점 획득한 것을 포함하여 브라질을 제치고 '''준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는다. 8강 B조에 속해 [[캐나다 축구 국가대표팀|캐나다]]를 3:0으로,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카메룬]]을 2:0으로 연속으로 깨며 일찌감치 4강을 확정지었고, 최종전 상대 브라질에게[* 어차피 일본은 4강 확정 상태였고, 브라질도 일본한테 패하지만 않는 이상 4강은 확정이었으나 브라질은 FIFA A매치 대회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팀에 무승부로 승점을 헌납하였다. 근데 이 때의 브라질 대표팀은 말이 브라질이지 2002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에서부터 부진했는데, 이게 컨페드컵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약체 캐나다와도 비기고 [[3위 결정전]]에서는 호주에게도 패하는 등 [[동네북]] 노릇을 제대로 했었다. 만일 일본이 이름값에 쫄아서 조심스런 경기만 하지 않았다면 도리어 이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브라질은 2002월드컵에서 전력이 부활하여 7전승 우승을 달성했다.] 무승부 승점 1점을 얻어 조 1위로 가볍게 4강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호주]]를 [[나카타 히데토시]]의 결승골로 깨고 결승에 갔으나,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프랑스]]에 0:1로 패해서 준우승했다. 그러나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를 상대로 [[졌지만 잘 싸웠다]]는 호평을 들으며 기분 좋게 대회를 마쳤다. 참고로, 일본의 이 '''준우승''' 기록은 현재까지도 FIFA 대회 A대표 대회 아시아 최고 기록이다. 이때 한국의 히딩크는 오대영감독 이라는 불명예스런 칭호를 달고있었으며 경질까지 논의되는 상황이였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32개국 본선에서는 자동으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H조|H조]] 첫번째 자리에 속해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벨기에]],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러시아]], [[튀니지 축구 국가대표팀|튀니지]]와 한 조를 이루었다. 러시아와 튀니지는 말할 것도 없는 약체들이고, 그나마 벨기에가 좀 경계 대상이긴 했지만, 벨기에도 당시 [[세대교체#s-1|세대교체]] 실패 탓에 전력이 강한 축엔 못 들었다. 동구의 강호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폴란드]]와 우승후보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포르투갈]]이라는 유럽의 두 강호들에 [[미국 축구 국가대표팀|미국]]이라는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다크호스까지 있는 조가 구성되어버린 한국과는 대조되었던 부분이었다. 첫 경기였던 벨기에전에서는 [[마르크 빌모츠]]에게 오버헤드킥으로 선취골을 얻어맞고 2:2로 간신히 무승부 승점 1점을 획득하며, 일본에게 [[FIFA 월드컵]] 첫 [[승점]]을 선사해 주었다. 2차전인 러시아전에서는 [[이나모토 준이치]]의 결승골[* 다만 이 골은 오프사이드 논란이 있었기에 빛이 바랜 부분도 없지 않다. '''지금처럼 공격에 직접 혹은 간접으로 관여시에만 오프사이드를 선언하도록 한 것은 2005년에 개정된 룰이 적용되면서부터'''이다. [[파일:Screenshot_20221216-043554_Gallery.jpg]] 당시에만 해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H조|32강 H조]] 일본 대 러시아 경기에서 [[이나모토 준이치]]의 결승골은 논란이 되었다. '''[[https://m.youtube.com/watch?v=ebzXz-dHlos|다른 일본 선수가 명백히 오프사이드에 있었으나, 오프사이드 선언을 안 했다]]'''. 2002 월드컵 당시에는 오프사이드 위치에 선수가 있다면 공을 받지 않더라도 짤없이 오프사이드였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폭동이 일어났고, 더불어서 안 그래도 반일감정이 극심한 나라인 러시아는 이 사태 이후로 더 [[일본]]을 [[증오]]하게 되었다.][* [[파일:Screenshot_20221216-044418_Gallery.jpg]] 특히 한국은 3위 결정전이었던 [[히딩크호/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터키전|터키전]]에서 [[안정환]]이 득점을 하였으나, [[이천수]]가 하필 오프사이드라인에 있어서 득점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아버린 통에 득점 인정을 못 받았다.]로 1:0으로 이겨 일본 역사상 본선 첫 승리를 따냈다. 마지막 튀니지전에서는 [[모리시마 히로아키]]의 선제골과 [[나카타 히데토시]]의 결승골로 2:0 승리를 해서 무패에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16강 상대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C조|C조]] 2위를 차지한 [[튀르키예 축구 국가대표팀|튀르키예]]였는데[* 이는 일본으로써는 대단한 행운이나 마찬가지였다. C조 1위가 브라질이었는데, 만약 브라질과 맞붙었더라면 일본은 속된 말로 개발리고도 남았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조별리그에서 브라질과 한 조가 되었는데, 선제골을 넣고 4골을 내리먹혀 1:4로 역전패했다. 그래서 일본은 브라질을 피하고 터키와 싸우게 된 것을 [[호재#s-1|호재]]로 생각했지만, 터키는 무려 대회 3위를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이는 '''일본만의 대단한 착각'''이었다. .], [[미야기 스타디움|미야기]]에서 열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16강#s-2.7|16강전]]에서 전반 12분 위미트 다발라의 헤딩골을 허용하며 [[터키]]에 0:1로 패했고, 그렇게 8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최종 순위 월드컵 9위로 마감했다. 경기 후 트루시에는 대표팀 자리에서 사임하면서 트루시에 재팬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말 그대로 당시 대한민국에 [[히딩크]]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트루시에가 있었던 셈인데, 일본의 2번째 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불구하고 16강 진출(9위)을 달성한 점은 한국과 같은 입장이다. 그렇지만 히딩크가 지금도 한국을 간간히 방문하면서 변함없이 한국을 향한 애정을 멈추지 않고 있고, 또한 한국인들도 그에 대한 보답으로 여전히 히딩크를 마치 신처럼 떠받들고 찬양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트루시에에 대하여 이렇게 하지 않고 있고, 트루시에 본인도 일본에 대하여 훈훈한 감정은 딱히 없다.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트루시에 역시 일본의 첫 16강이자 월드컵 9위를 기록한 만큼 처음엔 나름 명장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라이벌이자 공동 개최국인 대한민국이 [[히딩크호|같은 날 저녁에 16강에서 이탈리아를 깨고 준준결승전(8강)에 오르더니 나흘 뒤에는 스페인까지 격파하며]] 준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자, 그 때부터 갑자기 일본 내 여론이 180도 돌변한 것이었다. 어제까지 명장이었던 트루시에가 히딩크로 인해 오늘 갑자기 희대의 졸장으로 전락해버렸고, 일본인들은 '''"한국은 우리보다 늦게 감독을 선임했고 대진도 우리보다 더 어려웠는데도 4강까지 올라갔는데 트루시에 넌 고작(?) 16강에서 떨어지니?"'''라면서 트루시에를 향해 온갖 질타를 보냈다. 당시 일본의 전력을 볼 때 16강 진출(9위)도 매우 훌륭한 성적이었는데, 라이벌 한국이 더 높은 고지에 오른 것에 대한 열등감이 트루시에를 향해 폭발한 것이다.[* 트루시에 역시 [[AFC 아시안컵]] 우승과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을 거둘 만큼 일본 축구의 기틀을 다질만한 성과를 거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한 위상을 가진 [[FIFA 월드컵]]에서의 성적은 분명 감독 선임 기간이 늦었던 한국과 비교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을 낸 것은 사실.] 즉, 히딩크는 4강 신화를 계기로 본인의 커리어 반전을 이뤄낸 것은 물론 세계적인 명장으로 인정받고 있고 현재도 변함없이 한국에 애정을 보이고 있는 것에 [[한국인]]들도 히딩크를 존경하고 있지만, 트루시에는 일본의 첫 승점, 첫 승, 첫 토너먼트 진출에 16강전 탈락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인 16강 9위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 하게도 이후 일본은 [[남아공 월드컵|8년뒤]] 또 [[카타르 월드컵|12년뒤]]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성공하지만 모두 패해 같은 기록인 9위를 기록한다.] [[일본인]]들의 대접이 저러니 일본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